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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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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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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 이상헌. (2026년 5월 16일). 그는 정말 별난 사람인가 [이상헌의 바깥길]. 한겨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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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으로서 그는 충분히 별나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형으로서 그는 그리 낯설지 않다. 그는 자본주의의 예외라기보다 그 어두운 반복의 일부다. 그들을 물러나게 한 것은 역사의 자동 진행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싸웠고, 노동자들이 조직했고, 나라들이 타협했고,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의회에서, 때로는 국제기구의 지루한 회의장에서 시장의 언어를 고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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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참 별난 사람이라고. 이름을 굳이 적지 않아도 된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텔레비전 쇼 진행자 같고, 국가 지도자라기보다는 자기 이름이 크게 박힌 건물의 관리인 같다. 말은 거칠고, 몸짓은 과장되어 있으며, 외교는 협상보다 흥정에 가깝다. 국제질서는 손익계산서이고, 동맹은 갱신 가능한 계약서다. 그러니 그를 보고 별나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가 정말 그렇게 별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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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질적인 망각증을 잠시 걷어내고 역사를 되돌아보면, 자본주의는 세련된 얼굴로만 쓰이지 않았다. 시장의 자유, 합리적 선택, 효율성, 혁신 같은 말들이 교과서의 앞쪽을 장식하지만, 뒤쪽의 장부에는 관세, 독점, 식민지, 금융 투기, 노동 탄압, 세금 회피, 그리고 위기 때마다 반복된 희생양 찾기가 빼곡히 적혀 있다. 자유무역을 찬양하면서도 불리할 때는 보호주의를 꺼냈고, 작은 정부를 말하면서도 위기에 처한 자본을 구할 때는 누구보다 큰 정부를 불러냈다. 보이지 않는 손을 예찬했지만, 그 손이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곧바로 보이는 주먹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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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베커트의 새 책 ‘자본주의’를 읽어보라. 제목만 보면 간단한데, 책은 1300쪽이 넘는다. 제목은 짧고 고행은 길다. 들고 읽다가 떨어뜨리면 발등을 다치고, 끝까지 읽으면 세계관을 다칠 수 있다. 이 벽돌 같은 책이 보여주는 한가지는 선명하다. 자본주의는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시장은 혼자 걷지 않았다. 국가는 길을 냈고, 법은 울타리를 쳤고, 군대는 문을 열었고, 노동자와 식민지의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일하고 다치고 싸웠다. 자본주의는 축적과 성장의 역사이자, 동시에 강제와 저항, 불평등과 수정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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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그는 자본주의의 바깥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몇몇 습관을 유난히 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에 가깝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내용이 아닌 표현 방식의 새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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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자. 그는 먼저 중상주의의 낡은 장부를 들고 돌아온 사람이다. 세계경제라는 복잡한 상호의존의 그물을 그는 아주 단순한 계산으로 바꾼다. 누가 누구에게 이겼는가. 누가 누구에게 빼앗겼는가. 무역적자는 곧 패배이고, 관세는 복수이며, 동맹국도 계산이 맞지 않으면 채무자보다 못한 처지가 된다. 복잡한 공급망과 기술 변화와 임금 정체 따위를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당했다”고 말하는 일은 쉽고, 쉬운 말은 빠르게 퍼진다. 사람들이 오래 불안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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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공격은 때로 제멋대로다. 그러나 그 무작위성에도 나름의 족보가 있다. 19세기 말 보호주의는 외국 상품을 적으로 불렀고, 1930년대 관세전쟁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서로에게 보복했다. 1971년 미국은 달러와 수입관세를 무기로 삼아 동맹국들까지 압박했다. 그는 국제정치를 체스판보다 호텔 프런트의 미납 명단처럼 본다. 누가 방값을 덜 냈는지, 누가 수건을 가져갔는지, 누가 미니바를 비웠는지 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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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한 도금시대 자본가의 정치적 귀환이기도 하다. 미국의 19세기 말, 이른바 도금시대의 부자들은 스스로를 국가 번영의 주역으로 여겼다. 철도왕, 석유왕, 금융왕들은 때로 학교와 도서관을 지었고, 때로 정치인을 샀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후원하면서 동시에 포획했다. 그의 세계에서도 부는 능력의 증거이고, 실패는 대개 개인의 책임이며, 규제는 창의성의 적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가 살아나고,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면 일자리가 생기며, 노동의 목소리를 낮추면 경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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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가 단순히 부자들의 대변인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억만장자의 언어와 피해자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한다. 높은 빌딩에서 내려다보면서도 자신이 포위되었다고 말한다.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박해받는 사람처럼 말한다. 이것은 현대 포퓰리즘의 기묘한 마술이다. 강자가 약자의 문법을 빌려오고, 특권이 분노의 얼굴을 하고, 사적 이익이 국민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청중은 그 모순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 모순 자체가 공연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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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의 진짜 재능은 정책의 정교함보다 감정의 배치에 있다. 경제적 불안을 문화적 모욕으로 번역한다. 임금의 문제를 자존심의 문제로, 산업 구조의 변화를 배신의 이야기로, 사회적 균열을 애국과 반역의 구도로 바꾼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거짓말이 너무 많아서만은 아니다. 거짓말 속에 진짜 상처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버려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실제로 있었다. 문제는 그 상처가 치유의 정치가 아니라 복수의 정치로 끌려간다는 데 있다. 방향을 얻은 분노는 날카로운 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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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는 다시 별난 사람인가. 개인으로서 그는 충분히 별나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형으로서 그는 그리 낯설지 않다. 그는 자본주의의 예외라기보다 그 어두운 반복의 일부다. 그가 불편한 것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불러온 세계의 속마음을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는 게으른 비교를 좋아하지 않지만, 자본주의의 오래된 습관은 오늘의 장면을 읽는 데 여전히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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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위로가 될지, 비관의 씨앗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가 별나지 않다는 말은 우리가 생각보다 오래된 문제 앞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그와 같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늘 승리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을 물러나게 한 것은 역사의 자동 진행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싸웠고, 노동자들이 조직했고, 나라들이 타협했고,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의회에서, 때로는 국제기구의 지루한 회의장에서 시장의 언어를 고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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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자본주의는 아직도 거칠지만, 완전히 제멋대로 굴 수만은 없게 되었다. 시장 바닥 어딘가에는 사람들이 어렵게 새겨둔 글자가 있다. 정의, 평등, 노동의 권리, 인간의 존엄. 권력이 밟고 지나가면 흐려지고, 돈이 덮으면 지워지는 듯하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누군가 다시 읽고, 다시 쓰고, 다시 새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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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의 것은, 역사 안에서 다시 다룰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역사적 평범’은 어쩌면 우리에겐 희망이겠다.

content/신문/세계는 왜 다시 힘의 질서로 가는가.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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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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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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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 신진욱. (2026년 4월 21일). 세계는 왜 다시 힘의 질서로 가는가 [신진욱의 시선]. 한겨레,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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