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 +--- |
| 2 | +date: 2026-04-26 |
| 3 | +category: [신문] |
| 4 | +published: true |
| 5 | +desc: 신진욱. (2026년 4월 21일). 세계는 왜 다시 힘의 질서로 가는가 [신진욱의 시선]. 한겨레, 25. |
| 6 | +--- |
| 7 | + |
| 8 | +> 미국의 이란 침공 이후 세계는 군사 갈등과 경제 불안이 맞물린 장기 격동에 들어섰다. 그와 함께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도 뚜렷해지고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볼 지점은 지금의 격동이 단지 질서의 교체가 아니라 구질서 내부의 모순이 분출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여파는 외교·안보와 대외 무역을 넘어, 민주주의, 인권, 문화의 심층까지 흔들며 우리 삶의 조건을 재편하고 있다. |
| 9 | +
|
| 10 | +> 지금 막을 내리는 시대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지난 수십년간 지속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붕괴다. 국제정치학에서 이는 국제법과 규범, 제도화된 안보협력을 축으로 하는 질서를 가리킨다. 더 넓게는, 세계적 개방경제, 민주주의와 법치, 인권, 포괄적 자유, 복지국가를 아우르는 규범적·제도적 체제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질서가 무너졌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 질서가 내세운 규범과 실제로 길러낸 폭력 사이의 모순이 이제 더는 감춰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
| 11 | +
|
| 12 | +> 이 질서는 20세기 전반기를 뒤흔든 양차 세계대전과 파시즘, 대공황의 참사에 대한 뼈아픈 성찰 속에서 구축되었다. 주권과 자결, 법치와 인권, 평화와 국제협력이 그 핵심 원리였다. 현실은 언제나 그 이상에 미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러한 가치와 규범은 국제사회의 정당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 세계를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그 최소한의 기준 자체가 공공연히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오늘의 충격과 불안의 원천이다. |
| 13 | +
|
| 14 | +> 그러나 지금 세계를 이해하려면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힘의 질서를 단순히 맞세워선 안 된다. 오늘의 폭력은 바깥에서 들이닥친 것이 아니라, 바로 옛 질서 안에서 길러진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단지 이상에 못 미치는 한계가 아니라, 본질적인 자기모순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독재, 침략, 억압의 비자유주의적 폭력을 스스로 내장했고 키워냈다. 과거의 자유 속에는 미래의 폭력의 씨앗이 있었고, 현재의 폭력 속에는 과거의 타락한 자유가 남아 있다. |
| 15 | +
|
| 16 | +> 지금 세계는 그런 파괴적 모순이 낳은 결과다. 냉전기에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언어가 독재를 가리는 가면이었고, 탈냉전기에는 ‘규칙’과 ‘개방’의 언어가 불평등과 지배를 가리는 장치였다. 1950년대 이후 선진산업국들은 민주적 복지자본주의를 발전시켰지만, 세계 여러 곳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독재를 정당화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언어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 단일 패권 아래 자유주의 질서의 규칙이 안정적으로 작동한 때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불평등 심화와 부의 독점, 치안국가의 비대화가 계속된 신자유주의 시대이기도 했다. |
| 17 | +
|
| 18 | +> 그러므로 자유와 규칙의 시대가 돌연 끝나고 전혀 다른 폭력과 힘의 시대가 열린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배태되어 있던 모순을 더는 제어할 수 없게 되자, 그 모순이 이제 규범의 껍데기를 깨고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기본 틀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국력, 세계에 규칙을 강제할 의지와 영향력, 스스로 규칙을 준수하는 자기구속, 그리고 국내에 민주적 가치를 떠받치는 힘이 있었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 바로 그 토대가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그것은 단지 미국의 국력 쇠퇴가 아니라, 자유주의 질서가 키워온 부의 집중, 민주주의 후퇴, 극우의 주류화가 한데 폭발한 결과다. |
| 19 | +
|
| 20 | +> 그 폐허 위에 지금 부상하는 세계는 어떤 것인가? 국제정치적으로 유력한 진단은 세가지다. 첫째, ‘신냉전’ 가설은 미-중 패권 경쟁, 미국과 중·러 대결, 혹은 서방-반서방 대결을 핵심으로 정의한다. 둘째, ‘세력권’ 가설은 미·중·러 세 강대국이 각자의 세력권에서 배타적 패권을 추구하며, 상호 경합과 거래로 세계를 분할하리라 전망한다. 끝으로 ‘각자도생론’은 세계가 진영이나 세력권으로 구조화되지 않은 채 생존경쟁과 합종연횡이 계속된다고 본다. |
| 21 | +
|
| 22 | +> 세 가설은 현실의 다른 면을 비추지만, 공통의 시대 진단은 규범의 약화와 노골적인 힘의 논리다. 이 변화는 그동안 진행되어온 정치, 시민사회, 문화의 퇴행을 어떻게 폭발시키는가? |
| 23 | +
|
| 24 | +> 정치에서 변화의 핵심은 독재화를 촉진하는 국제 환경의 조성이다. 자유주의 질서 아래서는 권위주의 권력이 선거, 법치, 인권을 노골적으로 폐지하지 않은 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혼합체제 사례가 많았다. 국제적 규범과 압력이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제동이 약해졌다. 국제 환경은 반응하지 않고, 강대국은 이해관계를 따른다. 그 결과, 정치적 비용의 우려 없이 독재화가 감행될 수 있게 됐고, 강대국의 세력권 강화 의도에 야합한 꼭두각시 정권 수립의 유혹도 커졌다. |
| 25 | +
|
| 26 | +> 또한, 민주적 시민사회의 약화는 힘에 의한 국제질서의 사회적 기반이 되고 있다. 조직된 노동계급과 해방적 사회운동은 1960년대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떠받쳐온 힘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극우·과격우파 운동이 급성장하고 주류화되어, 이제 강대국 중 어디서도 민주적 시민들이 그들의 통치자를 통제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칸트를 계승하는 민주평화론의 눈으로 본다면, 지금 세계의 문제는 단지 힘의 남용이 아니라 그 힘을 견제할 시민적 힘의 부재이기도 하다. |
| 27 | +
|
| 28 | +>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면에서 새로운 질서는 약자를 지워버리는 데서 그 본질을 드러낸다. 교황이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자 트럼프는 ‘현실을 모른다’고 조롱했다. 그러나 고통으로 절규하는 인간을 직시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주의다. 그런데 왜 그것이 비-현실이라고 보는가. 약한 존재들은 하찮은 비-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힘의 질서에 상응하는 ‘권력현실주의’는 평등과 인간 존엄을 정면으로 거슬러 결국 극단주의로 기운다. 그 사고구조가 이제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
| 29 | +
|
| 30 | +> 이처럼 세계의 변화는 총체적이며, 역사적으로 누적된 것이다. 그만큼 지금 시대의 토대는 크다. 한국은 시대의 격동 속에 국가의 이익을 지킬 대응책을 치열하게 찾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인권, 평화가 무시되는 세계질서가 확립되면, 한국 역시 시대의 풍파를 피해 갈 수 없다. 많은 사람이 각자도생과 현실주의를 말하지만, 바로 그런 생존주의가 이 시대의 위험한 덫이다. 강자가 만든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만들 세계의 비전을 그려내고 국제적 연대를 구축할 때다. |
0 commit comments